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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오지마을, 사람냄새나 마을로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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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느티나무 작성일 24-01-01 23:50 조회 19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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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잎볶음은 뒷산 뽕나무 잎으로 만든 건데, 맛있죠?” “허리가 아프다고 하시던데, 괜찮으세요?” “그 집 딸은 남자친구 있어요?” “다들 손맛도 좋으신데, 산골마을 요리학교를 만들까요?”
지난 4일 낮 12시께 서울시 은평구 녹번산골마을의 마을회관인 ‘녹번산골 드림e’(은평구 통일로 578-27)는 주민 10여명의 활기찬 목소리로 왁자지껄했다. 함께 밥을 지어 먹으며 이웃 간 정을 나누는 ‘마을밥상’이 열린 것. 이날은 마을에서 손맛이 좋기로 유명한 성영희(80)씨와 윤순자(74)씨, 강옥희(81)씨가 아귀찜과 오이무침, 청국장 등을 만들었다. 신현수(77) 녹번산골마을 대표가 집에서 가져온 ‘뽕잎볶음’이 밑반찬 가운데 가장 인기였다.

주민들이 이렇게 모여 밝게 대화하는 모습은 불과 5년 전인 2012년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당시 녹번산골마을은 이웃한 응암산골마을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노후 주거지역이었다. 산골마을 전체의 건물 노후도가 무려 88.8%에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기존의 전면 철거 방식의 재개발이 아닌 ‘박원순표’ 마을 개량과 복원 방식인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한 뒤 산골마을은 놀랄 만큼 달라졌다. 서울시는 박원순표 도시재생사업으로 평가받는 이곳에 2012년 이후 총 30억원을 투입해 지난 2월 약 5년 만에 사업을 마무리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전혀 모르고 지냈어. 이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웃고, 함께 슬퍼하지. 마치 잃어버렸던 가족을 되찾은 기분이야.” 주민 김우례(82)씨는 산골마을의 변화된 모습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주민 간의 늘어난 소통’을 꼽았다.

골절 치료에 쓰는 광물 약재인 산골(구리가 나는 데서 나오는 푸른빛을 띤 누런 쇠붙이)이 많이 나서 붙은 이름인 ‘산골(山骨)마을’은 원래는 지금의 녹번산골마을과 응암산골마을이 합쳐져 있었다. 하지만 1972년 통일로가 면적 1만3896㎡인 마을을 관통하면서 마을이 두 쪽이 났다. 4층 이상 건물이 전체의 3%밖에 안 될 만큼 고층 건물이 없었고, 단독과 다가구주택에 270가구 550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산골마을은 도시재개발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1990년대 말부터 주변 일대에 재개발 광풍이 불었지만,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산골마을은 재개발 구역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2년 은평구는 산골마을 주민들에게 재개발 대신 주민이 주도해 마을을 재생하는 ‘서울시 주거환경관리사업’(이하 주거 환경 개선)을 제시했다. 이후 2012년부터 기반시설 확충과 공동체 활성화, 개별 주택의 개보수 등의 사업이 진행됐다. 신 대표는 주거환경개선 결과 마을 곳곳에서 큰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산골마을은 1970년대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 그때 무허가로 지은 주택이 많기도 했고, 하수관 등의 기반시설도 그때 들어선 거야. 이후에 환경 개선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사는 데 많이 불편했지.”

비만 오면 역류했던 하수관을 큰 것으로 바꿔 땅에 묻었고, 경사가 심하고 울퉁불퉁했던 골목길은 평탄하면서도 미끄럼을 방지할 수 있도록 포장했다. 낡고 위험했던 계단은 말끔히 새로 단장했고, 고령자가 많이 사는 마을의 특성을 고려해 골목에는 지팡이처럼 지지하며 걸을 수 있는 핸드레일을 설치했다.

“마을의 외관보다 속이 더 많이 변했어요. 하얀색 창틀이 있는 집은 모두가 단열과 방음, 보일러 등을 설치한 곳이죠. 전에는 곰팡이가 필 정도로 단열이 안 돼서 겨울에는 추위로 고생했거든요. 요즘은 지붕에 설치한 미니태양광 덕분에 전기료도 전보다 월 2만~3만원 정도 줄었죠.”


장양훈(62) 응암산골마을 대표는 주민들이 에너지자립마을에 열의를 다하고 있는 이유가 ‘에너지 손실’ 경험이 만든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2014년 이 마을에 혼자 살던 한 어르신(91)이 설날 연휴 엄동설한에 난방이 안 된 냉방에서 자다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테스트 이므로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기사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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